영산강 자전거길 광주~목포 104km, 봄에 멈춘 길을 다시 이어 제주로

 

코스모스가 핀 영산강변에서 여행짐을 실은 자전거와 함께 선 자전거 여행자



2026년 9월 29일.

제주도로 가는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진짜 출발점은 제주가 아니었다.

몇 달 전 봄, 벚꽃이 필 때였다.

선권이 형과 광양에서 출발해 섬진강을 

따라 올라갔다. 

섬진강 자전거길을 끝까지 달리고 

담양으로 넘어가 다시 영산강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런데 둘 다 시간이 부족했다.

광주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야 했다.

그 길이 마음 한편에 계속 남아 있었다.

가을이 되어 둘 다 시간이 맞았다.

“그때 못 간 길, 마저 가자.”

이번에는 광주에서 다시 출발해 목포까지 

영산강 국토종주를 끝내고, 

그대로 배를 타고 제주도로 넘어가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동시에 

봄에 멈춘 길을 다시 잇는 여행이었다.



새벽 3시 반, 여행은 제주보다 먼저 한강에서 시작됐다

집을 나선 시간은 새벽 3시 반.

광주행 고속버스가 오전 5시 40분 출발이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먼저 

자전거를 타야 했다.

집에서 터미널까지 23.87km.

한강은 아직 밤이었다.


새벽 한강 다리의 불빛을 배경으로 짐을 실은 여행용 자전거

다리의 불빛이 강물 위에 길게 

번지고 있었다.

짐을 가득 실은 자전거를 세워 놓으니 

이제야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이 났다.

제주까지 가는 여행인데 첫 페달은 

서울 한강에서 밟고 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선권이 형을 만났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짐을 싣고 광주행을 기다리는 두 대의 자전거


두 대 모두 짐이 만만치 않았다.

이 정도면 자전거 여행이라기 보다 

살림살이를 옮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나니 

마음은 가벼워졌다.

5시 40분 버스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봄에 멈춘 바로 그곳에서 다시 페달을 밟았다

광주에는 오전 9시 무렵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아침을 먹고 자전거에 올랐다.

이날 광주에서 목포까지 실제로 달린 거리는 

104.26km였다.

광주 시내를 빠져나가는 길은 생각보다 좋았다.

광주천을 따라 자전거길이 이어졌고, 

그대로 달리다 보면 영산강을 만난다.

봄에 멈춰 놓았던 길이 다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영산강 자전거길 공식 전체 코스는 

담양댐에서 승촌보와 죽산보, 

느러지 관람전망대를 지나 영산강 하구둑까지 

이어지는 133km 구간이다. 

우리는 이미 봄에 위쪽 구간을 달렸기 때문에 

이날은 광주부터 다시 시작했다. 


영산강변을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




승촌보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첫 번째 반가운 쉼터는 승촌보였다.

옆에서 바라보면 보의 구조가  

커다란 쌀알처럼 보인다.

자전거를 세우고 국토종주 도장을 찍은 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영산강 자전거길 승촌보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는 두 자전거 여행자


사진을 보니 둘 다 표정이 꽤 좋다.

앞으로 갈 길은 아직 길었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중요했다.

100km를 달리는 날, 아이스크림 하나의 행복은 

생각보다 크다.



나주 곰탕은 어디로 갔을까

나주로 내려가면서 생각해둔 점심 메뉴가 있었다.

나주에 가면 나주 곰탕을 먹자.

그런데 자전거 여행에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풍경 보고, 이야기하고, 길 따라 가다 보면 

원래 계획해둔 곳을 그냥 지나가 버린다.

우리도 그랬다.

어느 순간 보니 나주를 지나 

영산포까지 와 있었다.

영산포는 온통 홍어였다.

행정구역상 영산포도 나주지만, 

길에서 만난 주민의 말투는 영산포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나주에서 곰탕을 먹으려 했는데 

지나쳤다고 했더니, 그분은 대략 이런 식으로 

말했다.

“나주는 저짝이고, 여기는 영산폰디? 

여기는 홍어지라.”

확실히 그랬다.

홍어집은 많은데 곰탕집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점심으로 홍어를 먹고싶진 않아서 

생활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던 

동네 주민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백반 같은 점심을 먹을 곳이 없느냐고.

그분들이 추천해준 곳이 다복가든이었다.


영산포  다복가든 앞에 세워둔 여행용 자전거



곰탕을 놓쳤더니 이런 밥상이 나왔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백반이면 충분했다.

1인 12,000원짜리 백반을 주문했다.

그런데 음식이 계속 나왔다.


나주 영산포 다복가든의 여러 반찬과 생선·보쌈이 차려진 백반 한 상


반찬이 스무가지 쯤 됐다.

홍어찜, 가자미조림, 생선도 있고, 

보쌈도 있고, 갖가지 나물과 김치, 무침, 찌개까지 

한 상을 거의 빈틈없이 채웠다.



나주 영산포 다복가든의 여러 반찬과 생선·보쌈이 차려진 백반 한 상


둘이 마주 보며 웃었다.

나주곰탕을 못 먹어서 아쉽다고 했는데, 

길에서 우연히 물어 찾아온 식당에서 

오히려 이런 밥상을 만났다.

나는 여행할 때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여행은 뜻하지 않은 곳에 즐거움이 있다.

원래 계획대로 곰탕집을 잘 찾아갔다면 

이 밥상은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 많은 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자전거를 타는 우리 두 사람은 

끝까지 맛있게 잘 먹었다.



가을은 영산강 자전거길 옆에 먼저 와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탔다.

9월 말의 영산강은 

봄과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길가에는 꽃무릇이 피어 있었다.


소나무 아래 붉게 피어난 영산강 자전거길의 꽃무릇


소나무 아래로 붉은 꽃이 

한꺼번에 올라와 있었다.

조금 더 달리니 이번에는 코스모스였다.


코스모스가 핀 영산강변에서 여행짐을 실은 자전거와 함께 선 자전거 여행자


이 사진은 이번 여행의 대표사진으로 쓰고 싶다.

자전거에는 며칠 여행할 짐이 앞뒤로 

가득 실려 있고, 뒤에는 코스모스가 

강변을 꽉 채우고 있다.

멀리 강과 다리까지 보인다.

딱 이날 여행의 모습이다.

봄에는 벚꽃을 따라 섬진강을 달렸고, 

가을에는 코스모스 사이로 

영산강을 달리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었고, 끊겼던 길도 다시 이어졌다.



이런 길이 있으니 자전거 여행을 한다

무안 쪽으로 내려가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구간을 만났다.

강 한쪽에는 산과 바위가 붙어 있고, 

물 위로 데크 자전거길이 길게 이어졌다.


영산강과 숲 사이 목재 데크 자전거길을 달리는 여행자


왼쪽은 물, 오른쪽은 숲과 바위.

도로 소리도 거의 없었다.

이날 수많은 길을 달렸지만 

이 장면은 사진을 보자마자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빠르게 지나가 버리기 아까운 길이었다.


영산강을 배경으로 찍은 자전거 여행자 사진


자전거 여행은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가는 여행이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멈춰 사진을 찍고, 

어떤 곳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또 어떤 곳에서는 이름도 모르던 식당에 들어간다.

그렇게 천천히 내려가다 보니 해가 낮아졌다.



해가 지고서야 목포가 가까워졌다

저녁이 되자 영산강 너머로 해가 떨어졌다.


영산강 자전거길에서 바라본 붉은 석양


아침에는 서울 한강에서 

다리의 야경을 봤는데, 

저녁에는 전남의 강변에서 

해가 지는 걸 보고 있었다.

하루가 참 길었다.

그리고 마침내 목포 영산강 하구둑에 

도착했다.

국토종주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었다.

봄에 시작해 광주에서 멈췄던 영산강길.

몇 달 뒤 그 자리에서 다시 출발해 

결국 목포까지 왔다.

한 번에 끝내지 않아도 됐다.

멈춘 자리에서 다시 출발하면 

길은 다시 이어진다.

그걸로 영산강 종주가 끝났다.

하지만 그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목포까지 왔으니 회를 먹어야지

제주행 배 출항은 새벽 1시.

시간이 있었다.

저녁을 어디에서 먹을까 하다가 

여객터미널로 가는 길에 

대형마트에 들렀다.

우리 둘은 바닷가 도시에 가면 

대형마트에서 회를 사 먹는 걸

 꽤 좋아한다.

광어에 초밥까지 골랐다.


목포에서 구입한 광어회와 여러 종류의 초밥


양을 보고 또 말했다.

“이걸 둘이 다 먹을 수 있을까?”


야외에서 초밥과 회를 먹을 준비를 하는 여행자


마트 앞에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둔 

네모난 돌 구조물이 있었다.

가만 보니 의자로 쓰기 딱 좋았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거기에 앉아 회를 펼쳤다.

식당도 아니고 바닷가 전망대도 아니다.

대형마트 앞 돌멩이에 앉아 먹는 회였다.

그런데 맛있었다.

그리고 역시.

다 먹었다.



밤 12시, 이번에는 자전거와 함께 배에 오른다

목포항으로 갔다.

어둠 속에 거대한 배가 서 있었다.


목포항에서 제주로 출항을 기다리는 씨월드고속훼리 퀸제누비아Ⅱ


사진만으로는 배 이름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탄 배는 퀸제누비아Ⅱ였다.

9월 30일 새벽 1시 목포에서 

제주로 출항하는 편이었다.

배에 들어가보니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퀸제누비아Ⅱ의 조명이 밝은 메인 로비와 계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을 오르내리고, 

선내를 구경했다.

세븐일레븐, 파리바게뜨 카페, 레스토랑, 

셀프 라면룸까지 있었다. 

공식 선박 안내에도 퀸제누비아Ⅱ의 편의시설로 

파리바게뜨 카페, 세븐일레븐, 

레스토랑, 파노라마 라운지, 셀프 라면룸 등이 

안내돼 있다. 

자전거를 타고 하루 종일 달리다가 

이런 곳에 들어오니 배라기보다 

작은 건물 하나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날 가장 반가웠던 것은 결국 침대였다

우리는 침대가 따로 나뉘어 있는 

객실을 예약했다.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퀸제누비아Ⅱ 선내 침대와 침구


하얀 매트리스 위에 베개와 담요가 

놓여 있었다.

화려한 로비도 좋았고 큰 배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날 내 눈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마 이 침대였을 것이다.

새벽 3시 반에 집을 나왔다.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자전거로 23.87km를 달렸다.

광주에 내려 다시 목포까지 104.26km를 탔다.

승촌보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주 곰탕을 놓치고, 

영산포에서 뜻밖의 스무 가지 반찬을 만났다.

꽃무릇과 코스모스가 핀 영산강을 달렸고, 

물 위 데크길을 지나고, 

해가 지는 것을 보며 목포에 도착했다.

영산강 종주 도장을 찍고 회까지 먹었다.

이제 할 일은 하나였다.

자는 것.

새벽 1시 배가 목포를 떠났지만 출항의 낭만을 

오래 즐길 체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에 들어가 정말 푹 잤다.

배는 밤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눈을 뜨면 제주였다.

봄에 끝내지 못한 길 하나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길을 향해 가는 밤이었다.



여행 실용정보

여행일: 2026년 9월 29일~30일 새벽
집→서울고속버스터미널: 실제 주행 23.87km
서울→광주 고속버스: 오전 5시 40분 출발
광주 도착: 오전 8시 40분~9시 전후
광주→목포: 실제 주행 104.26km

영산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공식 전체 구간은 

담양댐에서 영산강 하구둑까지 

133km로 안내돼 있다. 

승촌보·죽산보·느러지 관람전망대 등이 

주요 지점이다. 

개인 주행거리와 소요시간은 

출발 위치와 우회·식사·휴식에 따라 

달라진다. 자전거행복나눔

다복가든: 전남 나주시 영산포로 192. 

                  내가 방문했을 때 백반은 

                  1인 12,000원이었다. 

                  가격과 메뉴는 이후 

                  달라질 수 있다.

목포→제주: 2026년 9월 30일 당시 이용한 배는 

                   퀸제누비아Ⅱ, 목포 01:00 출항편이었다. 

                   씨월드고속훼리는 운항시간이 

                   선박 사정·날짜에 따라 바뀔 수 있으므로 

                   다음 여행 때는 예약일 기준 스케줄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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