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자전거 일주 마지막 날, 일출 보며 세화에서 제주항까지
전날 밤, 선권이 형과 약속했다.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자.”
이번 제주 자전거 여행에서 일출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대신 전날 저녁의 노을은 아주 좋았다.
붉게 물드는 제주 하늘을 보고 나니 다음 날 아침도 욕심이 났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
하나는 해가 뜨기 직전부터 아침빛이 퍼지는 시간.
또 하나는 해가 지기 시작해 세상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시간이다.
낮에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지만, 그 두 시간만큼은 자꾸 자전거를 세우게 된다.
오전 5시 10분, 아직 제주가 깨어나기 전
알람을 맞춰놓고 잤다.
오전 5시 10분.
눈을 뜨자마자 몸이 무겁기는 했다.
며칠째 계속 자전거를 타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다시 잘 수 없었다.
마지막 날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 깜깜했다.
자전거 라이트가 길바닥을 비췄다.
주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 가로등 하나가 나타났다가 뒤로 사라졌다.
이렇게 어두운 길을 일부러 달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해 뜨는 시간을 길 위에서 만나고 싶었다.
소로는 《월든》에서 이렇게 썼다.
“아침은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며,
깨어나는 시간이다.”
실제 원문은 “The morning, which is
the most memorable season of the day,
is the awakening hour.”이다.
나는 《월든》을 읽을 때 소로의 이 문장을 참 좋아했다.
책에서 읽을 때도 좋은 문장이었지만,
그날 새벽에는 그 말이 이상할 만큼
가슴에 와닿았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길을
자전거 라이트 하나에 의지해 달리다가,
바다 끝이 조금씩 밝아지고
하늘에 붉은빛이 번지는 순간을 직접 보고 있으니
그 문장이 더 이상 책 속 문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밤이 걷히고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나도 함께 깨어나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쌓인 피로도 잠시 잊었다.
그래서 소로가 왜 아침을 ‘깨어나는 시간’이라고 했는지,
그날 제주 바다 앞에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래 좋아했던 문장이 여행 중 어느 순간
내 경험과 정확히 겹쳐질 때가 있다.
그날 아침이 내게는 그런 순간이었다.
제주 바다에 아침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금 달리자 어둠이 옅어졌다.
처음에는 바다와 하늘의 경계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늘 끝에 붉은빛이 생겼다.
선권이 형도 자전거를 세웠다.
사진을 찍고 다시 달렸다.
몇 분 지나니 또 하늘이 달라졌다.
구름은 분홍빛으로 물들고 바다는 서서히 색을 찾았다.
조금 전까지 라이트 하나에 의지해 달리던 길인데,
어느 순간 제주가 전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 여행에서 이 시간이 참 좋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어도 된다.
하늘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김녕에서는 바다 안쪽으로 길이 들어간다
세화를 지나 김녕 쪽으로 갔다.
제주 해안을 달리다 보면 바다 쪽으로
길게 들어간 좁은 길을 종종 볼 수 있다.
해녀들이 물질을 나가거나 잡은 것을
들고 나올 때 이용하던 바닷길들이다.
그 길을 자전거로 직접 달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전거길에서 잠시 빠져 바다 쪽으로 들어갔다.
양쪽은 물이었다.
좁은 콘크리트 길만 검은 현무암 사이로 바다 안쪽까지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김녕 바닷길은 꽤 유명했다.
멀리까지 뻗어 있어 물이 빠지는 시간에는 장관이었다.
드론을 띄워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 인상적이었다.
비짓제주에서도 김녕 해변의 이 바닷길을
물때에 따라 만날 수 있는 포토 스팟으로
소개하고 있다.
위치는 김녕리 462-1 해변 쪽이다.
유명한 명소라서 좋았다기보다,
제주 사람들이 바다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길 하나에 남아 있다는 게 좋았다.
나는 왜 제주 동쪽 바다가 좋은가
제주환상자전거길을 여러 번 돌았다.
이번이 네 번째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간마다 느낌이 달라졌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쪽은 동쪽이다.
이건 어디가 더 좋다는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다.
내가 자전거로 달리면서 느낀 취향에 가깝다.
서쪽 해안은 유명한 카페와 음식점, 관광지가 많다.
사람도 많고 화려하다.
그런데 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곳보다
조금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
동쪽을 달리면 아직도 작은 포구와 현무암 돌담,
해녀 작업장, 낮은 집들이
길 가까이에 남아 있는 곳을 자주 만난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 실제로 사는 마을이다.
작은 국수집 하나가 있고,
항구 앞에 오래된 집이 있고,
돌담 뒤에는 바다가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지나가다 보면
관광객이 보는 제주보다 사람들이 사는 제주가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진다.
선권이 형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형도 동쪽 길이 좋다고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여행 방식이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함덕서우봉, 마지막 인증
김녕에서 함덕까지는
공식 제주 환상자전거길 기준 약 9km다.
공식 코스는 성산 일출봉에서
김녕 성세기해변까지 약 29km,
김녕에서 함덕 서우봉해변까지 약 9km,
그리고 우리가 타고 갈 배가 기다리고 있는
제주항으로 이어진다.
제주 환상자전거길 전체 거리는 234km다.
우리에게 함덕 서우봉해변은
이번 종주의 마지막 인증지였다.
도장을 찍고 나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며칠 동안 계속 다음 인증센터를 향해 달렸는데,
이제 더 찍을 도장이 없었다.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시원하기도 했고,
조금 아쉽기도 했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끝이 멀어 보이는데
막상 끝에 도착하면 늘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제주항이 가까워지고, 사라봉이 보였다
함덕을 지나서도 길은 좋았다.
제주항으로 가까워질수록
도시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바닷가 쪽 길에는 여전히 작은 항구와 돌담이
남아 있었다.
멀리 산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라봉이었다.
사라봉 아래쪽에 제주항이 있다.
저 산이 보인다는 건 제주 여행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사라봉은 제주항과 제주시를 내려다보는 오름으로,
바다와 제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앞에는 제주항.
뒤에는 우리가 며칠 동안 달려온 제주 해안길.
이때부터는 페달을 밟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빨리 도착하고 싶지 않았다.
배에 자전거를 싣고 제주를 떠났다
제주항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배에 실었다.
목포로 향하는 배위에서 내려다보니
며칠 동안 자전거로 가까이 보던 바다가
이번에는 배 아래로 흘러갔다.
제주는 점점 멀어졌다.
목포에 도착했는데, 우리는 또 회를 샀다
목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이번 여행 첫날에도 목포에서 회를 사 먹었다.
마지막 날에도 결국 같은 선택을 했다.
대형마트에 들어가 회를 샀다.
광어회와 초밥을 들고 하당 쪽 바닷가로 갔다.
거기에 묘하게 우리를 위해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큰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회를 펼쳤다.
우리가 먹고 있는데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말했다.
“와, 맛있겠다.”
또 다른 사람들도 지나가면서 자기들끼리 말했다.
“저거 어디서 샀지?”
조금 웃겼다.
우리는 여행할 때 이런 식으로 자주 먹는다.
바닷가 도시의 마트에서 회를 사고,
좋은 풍경과 앉을 곳만 찾는다.
비싼 식당이 아니어도 된다.
이날도 그랬다.
목포 밤바다 앞에서 회를 먹으니
3박 4일 여행의 마지막 식사로 부족한 게 없었다.
다시 서울로
회를 다 먹고 자전거를 정리했다.
이제 고속버스를 타면 서울이었다.
광주에서 시작해 목포까지 영산강을 달렸고,
밤배를 타고 제주에 들어갔다.
제주 서쪽과 남쪽을 돌고,
동쪽 해안을 따라 다시 제주항까지 왔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목포로 건너왔다.
3박 4일.
길지는 않은 여행이었다.
그런데 아침과 저녁을
몇 번이나 다른 바다에서 맞았다.
마지막 날 새벽, 어둠 속에서
자전거 라이트 하나를 켜고 출발하던 순간이
아직 기억난다.
조금 뒤 해가 떴고,
바다가 보였고,
우리는 다시 달렸다.
여행이 끝난다고 길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제주는 끝났지만, 그 길은 오래 남았다.
제주 자전거 여행 마지막 날 실용정보
여행일: 2026년 10월 2일
출발: 세화, 오전 5시 10분경
주요 동선: 세화 → 김녕 → 김녕 바닷길 → 함덕서우봉해변 → 제주 북쪽 해안 → 사라봉 앞 → 제주항
제주환상자전거길: 전체 234km. 공식 코스상 성산일출봉 → 김녕성세기해변 → 함덕서우봉해변 → 용두암 순으로 이어진다. 자전거행복나눔
김녕 바닷길: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462-1 해변 일대. 물때에 따라 드러나는 바닷길로 소개된다. 비짓제주
제주→목포 배: 작성 시점 공식 안내 기준 퀸제누비아Ⅱ 13:40 출항, 17:55 도착. 운항시간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예약일 기준 확인 필요. Seaf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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