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자전거 일주 2일차, 중문에서 성산일출봉 지나 세화까지

광치기 해변에서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되진 않았다.

전날 광주에서 목포까지 100km 넘게 달린 후 

밤배를 타고 제주에 들어온 뒤, 

제주 첫날에도 중문까지 계속 달렸으니 

둘 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눈을 뜨니 생각보다 늦었다.

숙소를 나온 시간이 아침 9시쯤이었다.

제주 자전거 여행 둘째 날은 

일출을 보며 멋지게 시작하지 못했다.

대신 충분히 잤다.

그것도 여행에서는 꽤 중요하다.



범섬을 옆에 두고 서귀포로

중문에서 자전거에 올라 강정과 법환 쪽 

해안을 따라 서귀포로 향했다.

제주 남쪽 바다는 전날 달렸던 서쪽과 

또 달랐다.

달리다 보면 바다 한가운데 섬 하나가 나타난다.

범섬이었다.


제주 서귀포 해안을 자전거로 달리며 범섬을 배경으로 선 여행자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남겼다.

서귀포 쪽으로 갈수록  

문섬과 섶섬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로 지나가면 그저 창밖으로 잠깐 보이고 

끝날 풍경인데 자전거로 달리면 

섬이 한동안 옆에 붙어 따라온다.

어느 순간 범섬이 뒤로 가고, 

문섬이 나타나고, 또 조금 더 가면 

섶섬이 보인다.

그렇게 섬을 하나씩 갈아타듯 

서귀포 해안을 달렸다.


제주 서귀포 해안을 자전거로 달리며 문섬을 배경으로 선 여행자



제주에 오면 생각나는 접짝뼈국

아침도 먹어야 했다.

서귀포에서 찾아간 곳은 놈삐 뼈국이었다.


서귀포 놈삐뼈국 식당 외관


내가 제주에 오면 한 번씩 생각나는 음식이 

접짝뼈국이다.

커다란 돼지뼈와 고기가 들어간 국인데, 

내 입에는 서울에서 먹는 감자탕에서 

고춧가루와 매운맛을 빼고 훨씬 순하게 만든 

음식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국물 맛은 싱겁지 않다.

푹 끓인 맛이 진하다.


돼지뼈와 고기가 푸짐하게 담긴 제주 접짝뼈국


자전거를 타는 날에는 이런 음식이 좋다.

커다란 고기를 발라 먹고 국물까지 먹으니 

아침부터 속이 든든해졌다.

늦잠으로 날린 시간을 만회하려면 

부지런히 가야 하는데, 

또 먹을 때는 서두르지 않았다.


서복의 이야기가 남은 서귀포

서귀포 시내를 지나면서 서복 전시관 쪽도 

통과했다.

서복전시관 입구를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자 사진


서복은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으러 

동쪽으로 왔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서귀포에는 서복이 영주산에서 불로초를 구한 뒤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 

즉 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의 

글자를 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이를 다루는 서복 전시관도 있다. 

현재 서복 전시관은 관람료가 없고

09:00~18:00 운영한다. 

여행할 때 이런 이야기를 알고 지나가면 

같은 길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전에 왔을 때 자세하게 본 곳이라

이번에는 자전거로 지나며 흔적만 보고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쇠소깍에서 두 번째 날의 도장

보목을 지나고 서귀포 동쪽으로 계속 달렸다.

제주환상자전거길의 다음 인증지는 쇠소깍이었다.



제주환상자전거길 쇠소깍 빨간 인증센터

인증수첩을 꺼내 도장을 찍었다.

쇠소깍은 효돈천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다. 

바로 옆에는 검은 모래 해변도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눈에 많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있었다.

귤이었다.


큰 귤보다 작은 귤

효돈과 하효·신효를 지나 남원 쪽으로 

가는 길에는 감귤밭이 많았다.

실제로 신효동에는 제주 감귤의 역사와 품종을 

다루는 공립 감귤 박물관까지 자리하고 있다. 

9월 말에서 10월 초.

벌써 길가에서 귤을 팔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곳에 자전거를 세웠다.

제주 효돈 인근에서 구입한 작은 감귤이 담긴 봉지

과수원에서 그날 아침 따온 귤이라고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크고 보기 좋은 귤보다는 

작은 귤이 더 맛있다며 작은 것들을 골라주셨다.

만원어치를 샀는데 제법 많이 담아줬다.

자전거 짐은 이미 무거웠지만 

귤 한 봉지가 추가됐다.

그래도 이런 짐은 괜찮다.

달리다가 하나 까먹고, 또 조금 가다 하나 까먹었다.

제주에서 자전거를 타며 먹는 작은 귤은 훌륭한 간식이었다.


바다를 막았던 돌담, 환해 장성

다시 해안을 따라 달렸다.

제주 바닷가를 다니다 보면 낮은 현무암 성벽처럼 

이어지는 돌담을 만나게 된다.

환해 장성이다.


환해 장성에 앉아 있는 여행자 사진


환해 장성은 제주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곽으로, 국가유산포털에는 

일부 유적의 시대를 고려 원종 11년인 

1270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몽골 침입과 삼별초가 활동하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흔적이다.

관광지를 따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자전거길 바로 옆에서 이런 역사의 흔적을 

만나는 것도 제주 해안길의 재미다.


예전에 텐트를 쳤던 게우지코지

쇠소깍 가까운 하효 해안에는 

내가 기억하는 장소가 하나 있다.

게우지코지다.

처음 제주 환상자전거길을 돌았을 때는 

숙소 대신 야영을 했다.

그때 여기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그래서 다시 지나가니 풍경보다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제주 하효 게우지코지와 생이돌 해안을 배경으로 선 자전거 여행자


게우지코지는 튀어나온 해안 암석 지형이 

전복의 내장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옆의 뾰족한 두 바위는 

새들이 쉬는 바위라는 뜻에서 

‘생이돌’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하루를 끝냈다.

이번에는 잠깐 옛 생각만 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여행 방식은 달라졌지만 길은 그대로였다.


해녀가 있는 길을 지나고

제주 남동쪽으로 가면서 

해녀들의 생활 흔적도 계속 만났다.

해녀들이 물질을 나갈 때 사용하는 길과 

작업 공간, 벽에 그려놓은 해녀 그림이 

자전거길 바로 옆에 나타났다.


해녀들의 휴식 공간을 지나는 자전거

유명 관광지만 보고 달리는 길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 바다에서 매일 일을 하고, 

잡은 것을 손질하고, 말리고, 다시 판다.

제주 해안 자전거길에서는 

그 생활이 여행 풍경과 섞여 있다.


또 오징어를 만났다

그리고 또 멈췄다.

이번에는 오징어 때문이었다.

삼대 해녀의 집 앞에 

오징어가 줄줄이 널려 있었다.


제주 해안 돌담 옆에 길게 널어 말리는 오징어


전날 신창에서도 반건조 오징어를 

사 먹었는데 또 보였다.

나는 반건조 오징어를 좋아한다.

그러니 또 샀다.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았다.


구군 반건조 오징어와 탄산음료

말랑하면서도 쫄깃했다.

마요네즈를 찍고 탄산음료까지 같이 먹으니 

자전거 타다가 먹는 간식으로는 지나치게 훌륭했다.

제주 자전거 일주가 점점 환상자전거길 종주인지 

해산물 순례인지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성산 일출봉

오후가 깊어질수록 성산 일출봉이 가까워졌다.

멀리서부터 보인다.

처음에는 바다 위에 낮게 솟은 산처럼 보이다가 

페달을 밟을수록 점점 커진다.

이날의 풍경 가운데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이 구간을 고르고 싶다.

광치기 해변에 도착했다.


광치기해변의 용암 바위 너머로 보이는 성산일출봉


썰물 때 드러난 검은 용암 바위 사이에 

물이 고여 있었다.

그 물에 하늘이 비쳤다.

뒤에는 성산 일출봉이 있었다.

광치기 해변은 용암이 바다와 만나 굳으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해안 지형이 드러나는 곳이다. 

썰물 때는 바닷물 아래 숨어 있던 

바위 지형이 나타나고 바로 뒤로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 물웅덩이를 배경으로 선 여행자


성산 일출봉은 볼 때마다 멋있다.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도 좋지만, 

나는 이렇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다와 함께 보는 모습이 더 좋다.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자전거와 함쎄 직은 사진

자전거를 옆에 세우고 한참 사진을 찍었다.

이날만큼은 목적지보다 사진이 먼저였다.


성산 다음에는 조개죽

성산 일출봉을 지나 조금 더 달리면 

시흥리가 나온다.

여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집이 하나 있다.

시흥 해녀의집이다.


시흥리 해녀의집 외관과 여행용 자전거


여기서는 조개죽을 먹었다.

비짓제주에서도 이 집의 인기 메뉴로 

조개죽을 소개하고 있다. 

주소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하동로 114이며 

현재 공식 관광 정보에는 

라스트 오더가 19시 30분으로 안내돼 있다. 


제주 시흥리 해녀의집의 따뜻한 조개죽


하루 종일 바람 맞으며 자전거를 탄 뒤 

따뜻한 죽을 먹으니 속이 편했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음식이 여행 중에는 오래 기억난다.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음식 같았다.


세화로 가는 길, 하늘이 불붙었다

이제 숙소가 있는 세화까지 가야 했다.

해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길에서 하늘을 봤다.

자전거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붉게 물든 제주 하늘을 촬영하는 자전거 여행자


구름 아래쪽이 붉게 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나는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그걸 바라봤다.

아침 9시에 늦게 시작한 날이었다.

그런데 끝날 무렵에는 이런 하늘을 보여준다.

자전거 여행에서는 늦은 출발도 

가끔 보상을 받는다.


제주 둘째 날의 마지막은 갈치회였다

세화에 도착해 숙소를 정했다.

그리고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

역시 회 코너를 그냥 지나가지 못했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건 

갈치회와 전어회였다.

전어회는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갈치회는 다르다.


은빛 껍질이 붙은 신선한 제주 갈치회


은빛 껍질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비릴 것 같았다.

그런데 먹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싱싱해서인지 담백하면서 고소했다.

서울에서는 쉽게 먹기 힘든 회라 더 반가웠다.

제주에서는 회가 거창한 저녁 메뉴가 아니었다.

마트에 들러 그날 들어온 회를 사고, 

숙소에서 먹으면 됐다.

전날에는 광어와 방어를 먹었고 

이날은 갈치와 전어였다.

여행의 목적이 자전거였다는 사실을 

자꾸 잊게 만드는 식단이었다.


둘째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침에는 늦잠을 잤다.

중문에서 출발해 범섬과 문섬, 섶섬을 보며 

서귀포를 지났다.

접짝뼈국으로 속을 채우고 

서복의 이야기가 남은 길을 지나 

쇠소깍에서 도장을 찍었다.

효돈에서는 작은 귤 한 봉지를 샀다.

귤을 까먹으며 달렸고, 게우지코지에서는 

예전에 텐트를 치던 밤을 떠올렸다.

해녀의 흔적이 남은 마을과 환해장성을 지나 

또 반건조 오징어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오후에는 성산일출봉이 나타났다.

광치기해변에서 한동안 멈췄고, 

시흥리에서는 따뜻한 조개죽을 먹었다.

해가 질 무렵 다시 자전거를 타고 

세화로 향했다.

마지막에는 갈치회 한 점을 집어 먹었다.

하루를 돌아보니 제주에서는 목적지보다 

자꾸 중간에 멈춘 곳들이 기억에 남았다.

섬이 보이면 멈추고, 

귤이 보이면 사고, 

오징어가 보이면 먹고, 

멋진 하늘이 나오면 또 자전거를 세웠다.

아마 내가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빨리 지나가면 그냥 풍경이다.

천천히 지나가면 그 안에 사람도 있고, 

음식도 있고, 지난 여행의 기억까지 남아 있다.

그렇게 제주 자전거 여행 둘째 날도 끝났다.


제주 자전거 일주 2일차 실용정보

항목내용
여행일2026년 10월 1일
출발서귀포 중문, 오전 9시 전후
도착제주시 구좌읍 세화
주요 동선중문 → 강정·법환 → 서귀포 → 쇠소깍 → 효돈·하효 → 남원·표선 방면 → 성산일출봉 → 시흥리 → 세화
제주환상자전거길전체 234km. 공식 코스상 송악산 → 법환바당 → 쇠소깍 → 표선해변 → 성산일출봉 → 김녕성세기해변 → 함덕 → 용두암으로 이어진다. 자전거행복나눔
서복전시관서귀포시 칠십리로 156-8. 현재 09:00~18:00, 관람료 무료. 서귀포 E-Ticket
쇠소깍서귀포시 하효동. 효돈천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곳이며 제주환상자전거길 인증 지점이다. 비짓제주
게우지코지서귀포시 하효동. 생이돌과 함께 볼 수 있는 해안 암석 지형이다. 비짓제주
광치기해변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 63. 성산일출봉과 용암 해안 지형을 함께 보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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