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만회고택 숙박 후기 2|볕 냄새 나는 이불, 창호지 아침 빛 그리고 옥수수
전날 밤, 이불을 덮자 오래전 기억이 돌아왔다.
햇볕에 말린 이불 특유의 냄새.
어렸을 때 할머니가 이불을 볕에 널어 말려주시던 때의 기억이었다.
‘아, 이 냄새였는데.’
그 냄새를 맡으며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번에는 빛이 먼저 나를 깨웠다.
알람보다 먼저 들어온 창호지 빛
아침에 방이 환해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햇빛이 창문 틈으로 한 줄기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창호지가 빛을 한 번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 앞에는 손으로 수를 놓은 전통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햇빛은 창호지를 지나고, 다시 수놓은 천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어느 한 곳만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방 전체가 뿌옇고 부드럽게 환해졌다.
천에 놓인 수도 빛을 받아 하나하나 살아났다.
잠에서 막 깨어난 채 한동안 그 빛을 바라보았다.
호텔의 암막커튼을 걷었을 때 쏟아지는 햇빛과는 전혀 다른 아침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 고르라면, 아침밥
전날 주인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내일 아침 여덟 시에 아침 드세요.”
조금 이상했다.
나는 숙박만 예약했지 조식을 예약한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저희는 조식 비용을 내지 않았는데요. 안 먹어도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다만 이건 내가 묵었던 날 받은 호의에 대한 이야기다.
숙박 상품에 늘 포함되는 서비스라는 뜻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
다음 날 아침 실제로 차려진 상을 보니 왜 전날부터 마음이 쓰였는지 알 것 같았다.
직접 기른 것으로 찐 감자와 옥수수, 방울토마토, 목련차, 떡이 올라왔다.
채소 등을 갈아 만든 달짝지근한 음식도 있었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손이 많이 간 음식이었다.
일찍 일어나 씻고, 삶고, 찌고, 갈았을 사람의 시간이 보이는 밥상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만 다시 먹으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옥수수를 고를 것 같다.
소금도 설탕도 넣지 않고 그냥 쪘다고 했다.
그런데 쫀득쫀득했다.
씹다 보면 옥수수가 가진 단맛이 천천히 올라왔다.
설탕의 단맛과는 달랐다.
옥수수가 원래 이런 맛이었나 싶었다.
무엇보다 냄새가 좋았다.
아직도 다시 먹어보고 싶은 음식 하나를 꼽으라면 그 옥수수다.
이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만 고르라고 해도 나는
명월루의 풍경보다 그 아침밥을 먹던 시간을 고를 것 같다.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밥상에서 이 집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래된 집은 사람 사는 법을 잠깐 보여주기도 한다
아침을 먹고 다시 마루에 앉았다.
만회고택의 마루에 앉아 천천히 사방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탁자도 있고, 벽에는 예전에 편지나 문서를 넣어두었을 법한
나무 서찰함 같은 생활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반들반들해진 나무와 오래된 물건에는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손때가 남아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서 대대로 살았던 사람들은 참 정갈하게 살았겠구나.
깨끗하고, 차분하고, 바르게 살려고 했던 사람들이었겠구나.
물론 몇백 년 전 사람들의 삶을 내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집을 천천히 보고 있으면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이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앞으로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조금 더 정갈하게.
조금 더 반듯하게.
사람에게 정을 주면서.
나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회고택은 하루를 살아봐야 조금 보이는 집이었다
가을이 되면 다시 가려고 한다.
주인 어르신이 가을의 만회 고택은 또 참 좋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바쁘게 사진부터 찍지 않을 생각이다.
명월루에 오래 앉아 있고 싶다.
마루에도 한참 앉아 있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는 걷지 못했던 마을길도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래된 집을 이곳저곳 바라보고 싶다.
처음 만회 고택에 갔을 때는 좋은 고택에서 하룻밤을 자러 간다고 생각했다.
돌아올 때는 조금 달랐다.
만회 고택은 구경하는 집이라기보다,
하루를 살아봐야 조금 보이는 집이었다.
햇볕에 널린 하얀 이불 한 장에서부터 아침상에 놓인 옥수수 한 알까지.
오래된 집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이 그곳에는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1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1편에서는 오후 5시 아무도 없는 만회 고택에 도착해 뒷마당의 눈부신 광목 이불을 보고,
사진을 잘 찍는 주인어르신을 만나고, 명월루에서 풍경을 바라보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1편 보기 → 봉화 만회고택 숙박 후기 1|눈부신 광목 이불과 정이 많은 선비
만회고택 여행 실용 정보
- 위치: 경북 봉화군 봉화읍 바래미1길 51
- 숙박 형태: 전통 고택 객실
- 입실/퇴실: 방문 전 최신 안내 확인 권장
- 예약: 숙박 예약 플랫폼 또는 숙소 문의(저는 카카오맵에서 예약했어요)
- 주차: 집앞에 넉넉한 주차장이 있습니다.
- 조식: 본문 내용은 방문 당시 받은 호의에 대한 기록이며 상시 제공 서비스로 단정하지 않음
- 추천: 오래 머물며 마루·명월루·마을 풍경을 천천히 보는 여행에 잘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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