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가 예술이야, 한옥성당에서 행주산성 별빛 공연까지 걸었던 하루
지난 토요일, 공연을 좋아하는 친구와 행주로 갔다.
목적지는 저녁에 열리는
2026 고양 국가유산 야행 ‘행주가 예술이야’였다.
그런데 공연 시간에 맞춰
바로 행주산성으로 가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행주는 산성만 보고 돌아오기보다
천천히 걸었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동네다.
그래서 낮부터 움직였다.
이날 축제는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행사였고,
내가 간 10월 10일은 오후 6시 30분부터
개막 특별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토요일이었다.
공식 운영시간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다. 고양시청
축제에 가기 전, 꽃밭에서 잠깐 멈췄다
행주 산성으로 가기 전
코스모스가 한창 핀 꽃밭에 먼저 들렀다.
가을 햇빛 아래 분홍색과 흰색 꽃이 빽빽하게 피어 있었다.
이날 하루가 밤 축제를 보러 가는 일정이라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발이 붙잡혔다.
굳이 오래 머물 필요는 없었다.
꽃 사이에 잠깐 서서 사진 한 장 찍는 것만으로도
계절을 제대로 만난 기분이었다.
1910년에 지어진 행주성당, 아직도 미사가 이어진다
다음은 행주 성당이었다.
고양에 오래 살았어도 이곳을 모르는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
행주 성당은 1910년에 지어진 한옥성당이다.
1928년 지금 자리로 옮겨졌고, 1949년 증축을 거쳤다.
2015년에는 옛 사진을 참고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문화재청
새 성당 바로 옆에 오래된 한옥 성당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기와 지붕 아래 나무 기둥과 창문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서양식 성당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은 건물 자체가 아니었다.
안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백 년이 넘은 건물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백 년이 넘은 공간이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게 참 좋았다.
박물관처럼 보존된 옛 건물과는 느낌이 달랐다.
이곳은 여전히 사람들이 들어가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고, 일상의 시간을 보내는 성당이었다.
'행주가 예술이야'를 보러 왔다면 공연 시작 전에
이곳까지 걸어와 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
행주 산성에서 멀지 않다.
행주 서원 문은 닫혀 있었다
성당에서 조금 걸으면 행주 서원이 나온다.
1842년 권율 장군의 전공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원래 이름은 기공사였고 왕명으로 건립됐다. 고양시청
기대하고 갔는데 문은 닫혀 있었다.
조금 아쉬웠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행주서원은 평소 내부 관람을 하려면
미리 예약해야 하고,
예약하지 않은 방문객은
담장 밖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Visit Korea
알고 갔으면 덜 섭섭했을 텐데, 여행이라는 게 늘 그렇다.
문 하나 닫혔다고 길 전체가 닫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한강 옆 잔디밭, 행주 역사공원
행주 서원을 지나 한강 쪽으로 내려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행주 역사공원이 나온다.
넓은 잔디밭에 텐트를 친 가족들이 있었고, 의자를 내놓고 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식 안내에도 이곳은 한강변 시민여가 공간이자
행주산성누리길 일부라고 소개되어 있다. 고양시청
바로 앞은 한강이다.
축제를 보러 서둘러 산성으로 올라가기보다,
여기서 한참 쉬었다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멀리 나온 것도 아닌데 풍경은 꽤 느긋했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다가 만난 작은 무인 가게
공원을 지나면 나무가 길게 늘어선 길이 이어진다.
저녁빛이 나무 윗부분을 물들이고 있었다.
걷기 좋은 길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유명한 길보다
가끔 그 옆에서 만나는 작은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날도 그랬다.
호박 한 봉지 3천 원.
애호박 하나 2천 원.
가지 한 봉지 2천 원.
농사지은 사람이 농산물을 내놓고
계좌번호 하나 붙여놓았다.
가져가고 돈은 알아서 보내면 된다.
나는 이런 걸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동그란 애호박이 눈에 들어왔다.
마트에서 흔히 보는 반듯하고 길쭉한 애호박과 달랐다.
예전에 이런 호박을 먹어 본 적이 있는데
호박 자체의 단맛이 꽤 좋았다.
애호박의 진짜 맛을 느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여행을 걸어서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그냥 스쳐갔을 풍경이다.
걷다 보면 멈추고,
가격표를 읽고,
호박 모양도 한번 들여다본다.
길 위에서 만나는 건 관광지만이 아니다.
그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만난다.
그래서 마음까지 조금 푸근해졌다.
해 질 무렵 행주 산성으로
이 길은 평화 누리길과도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행주 산성에 도착했다.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축제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길에는 청사초롱을 닮은 등이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연인끼리 손잡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끼리 안내판을 읽으며 걷는 사람도 있었다.
밤 축제는 무대 하나만 보는 행사가 아니었다.
올라가는 길부터 이미 축제였다.
대첩 기념관에서 다시 본 행주 대첩
중간에 대첩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2025년 콘텐츠를 새로 꾸며 재개관했다.
행주대첩 당시 무기와 권율 장군 이야기뿐 아니라
당시 전투를 몰입감 있게 보여주는 실감 영상과
인터랙티브 전시가 들어가 있다. 고양시청
나는 이 실감 영상이 꽤 볼 만했다.
영상 시간이 길지도 않아 산성을 올라가는 중간에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역사책에서 ‘행주 대첩’이라는 네 글자로 읽었던 전투가
화면과 소리로 펼쳐지자 느낌이 달라졌다.
밖으로 나오면 다시 실제 행주 산성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보고 지금 그 자리를 걷는 셈이다.
이날 행주의 일몰은 반칙에 가까웠다
정상 쪽으로 올라갈수록 하늘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발을 멈추게 하는 시간이 왔다.
정말 멋있었다.
구름 아래로 해가 내려가면서 하늘 전체가 붉게 번졌다.
나는 여행에서 일출과 일몰을 좋아한다.
같은 장소도 그 몇 분 동안은 전혀 다른 곳이 된다.
축제를 보러 올라왔는데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날 최고의 장면 하나를 이미 만났다.
권율 장군과 사진 한 장
정상의 행주 대첩비 쪽에는 재미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권율 장군 복장을 한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왜군 복장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공연 배우가 무대를 하는 방식이라기보다
관람객들이 당시 인물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꾸민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권율 장군님께 사진을 찍자고 부탁드려 한 장 찍었다.
뒤로 높이 솟은 것은 행주산성 정상의 행주대첩비다.
공식 안내에 따르면 정상의 비는 높이 15.2m다. 고양시청
사진 한 장인데 묘하게 여행의 증명 사진 같은 느낌이 났다.
무대 앞에는 의자가 아니라 돗자리가 있었다
오후 6시 30분.
충의정 앞에서 개막 특별 공연이 시작됐다.
여기서 마음에 들었던 게 있다.
무대 앞에 거창한 객석을 만든 게 아니라 돗자리를 깔아두었다.
사람들이 신발 벗고 편하게 앉아서 공연을 기다렸다.
그런데 더 재미있었던 건 내빈석이었다.
따로 없었다.
시장도, 시의회 관계자들도 일반 관람객과 똑같이 돗자리에 앉아 공연을 봤다.
축제에서 가장 지루한 시간이 가끔 ‘내빈 소개’가 될 때가 있다.
이날은 달랐다.
소개도 인사도 짧았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됐다.
나는 이런 게 좋았다.
주최 측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보러 왔는지를 알고 있는 행사 같았다.
첫 무대부터 박수가 터졌다
첫 번째로 기억에 남은 것은 고양시 태권도 시범단이었다.
와, 정말 잘했다.
발차기가 올라갈 때마다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공중에서 몸을 돌고 송판이 깨질 때마다 박수가 터졌다.
태권도 시범이 이렇게 재미있는 공연이 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다음은 고양시 소년소녀합창단이었다.
조금 전까지 몸을 날리던 태권도 공연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가을밤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퍼졌다.
축제라는 게 이런 것이 좋다.
한 무대에서 전혀 다른 장르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날의 절정, 용용클태 Y2KT
그리고 내가 이날 가장 신나게 본 무대가 시작됐다.
용용클태 Y2KT.
고양에서 활동하는 퓨전국악 아티스트로,
힙합과 DJ 장비, 국악을 결합한 공연을 한다.
실제 소개에도 국악과 힙합, 디제잉을 섞어
관객과 호흡하는 공연이 특징이라고 되어 있다. 고양버스커즈
소리꾼 박유빈도 함께했다.
판소리 수궁가에서 가져온 이야기에 힙합과 리듬을 얹은
‘좌우나졸’ 무대가 특히 재미있었다.
‘좌우나졸’은 실제로 판소리 수궁가의
토끼를 잡아들이는 대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용용클태의 퓨전국악 곡이다. 벅스!
처음에는 국악 공연인가 싶다가,
어느 순간 DJ 공연 같아지고,
또 소리꾼의 목소리가 올라온다.
어깨가 저절로 움직였다.
조금 과장하면 행주 산성에서 클럽이 열린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래된 산성, 한옥 건물인 충의정, 국악 소리, DJ 장비.
따로 놓으면 안 어울릴 것 같은 것들이
이날 밤에는 꽤 잘 어울렸다.
마지막은 대금 한 소리
축제의 마지막쯤에는 ‘대금 아씨’의 연주가 있었다.
세 곡인가 네 곡 정도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이선희의 〈인연〉이 기억에 남았다.
밤공기가 내려앉은 행주산성에서
대금으로 듣는 ‘인연’은 평소 듣던 노래와 완전히 달랐다.
빠른 음악에서는 몸이 먼저 반응했는데,
대금 소리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긴 호흡으로 뻗어 나가는 소리가 산성의 밤과 잘 어울렸다.
낮부터 꽤 오래 걸었는데도 그 순간에는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을밤에 듣는 대금은
사람을 잠깐 멈추게 하는 힘이 있었다.
축제가 끝난 뒤에야 진짜 ‘별빛 아래 행주’가 보였다
공연이 끝났다.
아까 올라올 때 보았던 길은 완전히 다른 길이 되어 있었다.
등불이 숲 사이로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돌아보니 행주 대첩비에도 빛이 들어와 있었다.
낮에는 묵직한 돌비였는데,
밤에는 별이 흘렀다.
공식 주제인 ‘별빛 아래 행주’가 그때 가장 잘 이해됐다.
올해 행사는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열흘 동안 이 주제로 진행된다. 고양시청
우리는 다시 천천히 산성을 내려왔다.
낮에는 한옥 성당 창문으로 미사를 보았고,
한강변 잔디밭을 걸었고,
길가 농산물을 구경했다.
저녁에는 붉은 해를 보았고,
밤에는 태권도와 합창과 국악을 들었다.
멀리 여행을 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가 꽤 길고 풍성했다.
이런 날이면 나루 ON THE ROAD의 ‘여행’은
꼭 멀리 떠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걷다 보면 익숙한 동네에서도
아직 만나지 못한 장면이 있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2026 고양 국가유산야행 ‘행주가 예술이야’는
2026년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행주산성 일원에서 열리며,
공식 운영시간은 18:00~22:00이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일부 체험 프로그램은
유료 또는 사전예약 방식이다.
공식 문의는 031-8075-3404다. 고양시청
축제장 주소: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로15번길 89. 고양시청
행주성당: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로144번길 50.
1910년 건립, 1928년 이축한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고양시청
행주서원: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로 127-17.
평소 내부 관람은 사전 확인·예약을 권한다. 고양시청
추천 동선: 행주성당 → 행주서원 → 행주역사공원 → 메타세쿼이아길 → 행주산성.
낮부터 걸어 해 질 무렵 정상에 도착하면 일몰과 야간 축제를 함께 보기 좋다.
먹을거리: 내가 방문한 개막 특별 공연 날에는
축제장 안에 일반적인 푸드코트나 음식 판매 부스가 따로 없었다.
체험 부스는 여러 곳 있었지만 식사는 별도로 생각해야 했다.
행주산성 주차장 앞쪽에는 기존 음식점들이 있으니 그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단히 먹을 것을 준비해 공연장 돗자리에서 먹는 방식도 괜찮겠다.
다만 현장 음식 반입 규정은 방문 당일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오히려 “축제니까 안에서 저녁 먹으면 되겠지” 하고 올라갔다가는
배가 먼저 공연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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